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꿈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학교를 그만둔단다. 깜짝 놀란 아내와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들의 마음을 돌려 보려 애를 썼지만, 아들은 석불처럼 꿈적 않고 언감생심 나를 설득하려 든다.
둘 사이에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집을 뛰쳐나갔던 아들을 달래서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형제는커녕 하나뿐인 형수마저 떠난 고향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이 세상 나만을 위한 그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느낌이다. 감동적인 말 몇 마디로 아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지만, 머리는 백짓장이다. 지금껏 많은 사람의 멘토가 되어 인생의 길잡이인 양 잘난 채 한 것이 많은 사람 앞에서 홀딱 벗겨진 느낌이었다. 수다보다 침묵이 훨씬 더 잘 번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눈을 뜬 채 무릎 위에 올리고 창밖을 바라보는 아들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수다스러웠다. 마치 얼음 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은 싸늘함에 화들짝 놀랐다. 사람의 마음이 진정 빛보다 빨랐다. 아들은 잡힌 손을 뿌리치고 빨간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고향에 도착해서 처음 찾은 곳이 지금 아들 나이 때 들려 며칠 밤을 묵었던 천년고찰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龍門寺’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하늘은 마치 내 마음같이 희끄무레했다. 용문사에서 대웅전 격인 대장전大藏殿을 향했다. 대장전 삼존불三尊佛 뒤로 금빛 목각후불탱이 화려하다. 평면에 그림으로 조성한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이곳 용문사에는 일일이 정성을 다해 나무를 다듬었다. 우리나라에 몇 되지 않은 목각후불탱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온전한 형상의 상체와 달리 아랫부분은 볼륨감이 얕게 생략되어 있다. 세상이 고통도 괴로움도 없는 불국토佛國土 세상으로 변하는 날 이 후불탱 조각이 온전하게 다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이곳이 나의 아픔을 내려놓기 좋을 것만 같고, 천륜의 애물단지 아들에게 내 사랑을 전하기 좋을 것만 같다.
더욱 내 마음이 닿는 것은 이곳 대장전 불단 양옆으로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윤장대 때문이기도 하다. 팽이처럼 돌릴 수 있는 윤장대는 불경을 넣어두는 곳이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돌린다는 뜻이며,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 고려 시대 조성된 것으로 글을 모르거나 시간이 없는 불자들을 위해 만들어져 용문사 대장전 삼존불, 목각후불탱과 함께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불법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지만, 불심을 빌어서 아들의 마음을 어찌해보려는 내 절실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들은 드럼을 배우겠다고 선언을 했다. 친구를 따라 음악학원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드럼을 처음 치는 순간 아들은 자신이 나아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번듯한 말을 곧이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학원을 내 손으로 직접 주선해 주었고, 녹녹치 않은 학원비를 매달 대주었다. 일 년이 지나자 이제는 산 넘어 산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대입 검증고시를 준비하면서 드럼만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윽박지르고, 달래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설득에 실패하자 매를 들고 말았다. 그 후 아들은 내 가슴을 밟고 집을 뛰쳐나갔고 내 가슴은 하염없이 무너졌다. 맑은 하늘도, 꽃이 피는 것도, 아름다운 음악도 내게는 한숨 쉬게 하는 요인이었다. 길거리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 어머니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그림을 그리겠다는 내 말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가난했던 터라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내가 집을 일으키려면 직업이 안정된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머니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어머니가 화구며 붓, 그동안 그려놓았던 그림까지 몽땅 불태웠다. 어머니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내 꿈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둥지를 박차듯 집을 뛰쳐나온 나는 가까운 용문사를 찾았다. 홀로 넓은 절집 마당을 자작자작 걷는 내 마음속에 백만 가지 번뇌가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대장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삼존불과 후불탱의 불보살 시선이 아들과 내게로 쏠린다. 합장하고 지극히 굽어보는 불상의 눈과 마주하는 순간 자기연민에 설움이 북받친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그러하듯 미주 알 고주 알 고자질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길을 택하지 않은 아들에게 우연을 가장해 내 대신 설득해 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이때, 아들은 홀린 듯 절을 올리기 시작한다. 무엇을 위해 올리는 절인지 알 수 없지만, 아들의 행동은 내게 긴장을 부추긴다. 누구의 기도가 더 간절한지 경쟁하듯 나도 절을 올렸다. 내 이마에도, 힐끗 훔쳐본 아들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원하는 바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지만, 종교의 유무를 떠나 절실한 마음이 되어 올리는 절이었다.
백팔 배를 끝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처님 아래 나란히 앉았다. 눈물인지 땀인지 눈을 가린다. 흐린 눈으로 바라본 후불목각탱이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부조 형태의 후불탱이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날, 이 세상이 극락으로 변한다는 뜻을 떠올렸다. 내게는 오늘이 그날일까? 혹, 아들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닐까? 돌아본 아들은 눈을 감고 있다. 고운 얼굴 옆선이 후불탱 불보살을 닮았다. 애정의 시선이 차고 넘치면 간혹 생기는 착각이라 생각했다. 용문사로 나를 찾아왔던 어머니도 이토록 간절했을까? 눈물로 호소하던 어머니는 백팔 배를 올리는 내게 “네 꿈이 이토록 절실했더냐!”라며 그때부터 가난한 살림에도 미술대학을 선택한 내게 힘을 보태주었다.
아들의 바람이 나보다 더 간절했던가. 조용히 일어나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법당 안 양옆에 세워진 윤장대 주위를 돈다.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윤장대를 돌릴 수 없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윤장대를 탑 돌이 하듯 돌고 있다.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진중하게 치르는 의식 같다.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니 합장한 아들의 얼굴이 목각후불탱의 관음보살 얼굴이다. 이때 내 앞의 금빛 찬란한 목각불상이 그윽한 시선으로 굽어보며 내게 그만 내려놓으라고 한다. 거친 파도가 사라지고 난 뒤 순간의 고요가 마음속으로 밀려든다. 더불어 애물단지 아들은 그렇게 자유가 된다.♠